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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헤어짐보다 앞서라.
모든 것이 시작되는 거대한 심연을 생각하라.
가장 깊은 떨림을 주는 원천을 찾아라.

그러면 이 한 번뿐인 삶을 완전히 즐길 수 있을 테니.
  • 트러스트 (채권-해럴드 배너. 넷)
    1.  ... 그녀와 대화 비슷한 것을 나누는 일이 가능해졌다. 이런 식의 호전은 헬렌을 늘 벤저민에게서 갈라놓던 거리감을 되살렸다. 어쩌면 거리감이 더 커졌을 수도 있다. 헬렌이 벤저민을 아랑본 건 사실이었다. 심지어 그녀는 벤저민에게 예의를 지키기도 했다. 하지만 벤저민은 그 방식이 소름 끼치게 느껴졌다. 둘 사이의 간격을 줄여보려던 헬렌의 옛 노력은 이제 멈춰버렸다. 그런 애정어린 시도야말로 둘의 결혼생활의 토대였는데 말이다. 벤저민은 지난 세월 동안 그녀의 노력에 감동을 받았었다. 심지어 그런 노력이 자연스러운 사랑보다 값진 것이라고 느꼈다.  2.  ... 벤저민은 일부러 타일에 신발을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자기가 왔다는 걸 알리려 했다. 헬렌이 그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적막한 폐허와도 ..
  • 트러스트 (채권-해럴드 배너. 셋)
    1.  평생 자족적으로 살아왔다는 점을 자랑으로 삼던 사람이 문득 세상을 완전하게 만드는 건 친밀함이라는 걸 깨달으면, 친밀함은 참을 수 없는 짐이 될 수 있다. 축복을 발견하면 그 축복을 잃을지도 모륻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니 말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에게 과연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권리가 있는지 의심한다. 사랑하는 상대가 자신의 숭배를 지루하다고 느낄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상대에 대한 갈망이 그들로서는 직접 확인할 수 없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드러났을지 몰라 두려워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 모든 의문과 걱정의 무게에 허리가 굽어져 자신의 내면을 보게 되고, 동반자 관계에서 새로 발견한 기쁨 탓에 이제는 떨쳐버렸다고 생각했던 고독을 더욱 깊이 표현하게 된다.  2.  헬렌은 언제 마지막으로 울었..
  • 트러스트 (채권-해럴드 배너. 둘)
    1.  헬렌은 머잖아 자신이 그저 아버지의 제자가 아니라 연구 대상이 되기도 했다는 걸 깨달았다. 아버지는 자기 교육의 구체적 결과에 관심을 두는 듯했고, 그런 교육이 딸의 정신과 도덕관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추적했다. 아버지에게 검사를 받을 때면, 헬렌은 다른 누군가가 아버지의 눈 뒤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헬렌은 이 모든 캐묻기 때문에 자신이 조용하고 젠체하지 않는 성격을 형성하게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성격은 헬렌이 부모와 부모의 친구들 곁에 있을 때 한 점 오류도 없이, 한결같이 연기해낸 배역이기도 했다 - 그녀는 소심하게 에의바르고, 최대한 말을 아꼈으며, 가능하면 고갯짓이나 단답형으로만 대답했다. 늘 사람들의 시선을 피했으며, 무슨 대가를 ..
  • 트러스트 (채권-해럴드 배너. 하나)
    1.  그렇게 몇 년의 정체기가 흘렀다. 이 시기에 벤저민은 다양한 수집품(동전, 도자기, 친구)을 모아보려고 건성으로 시도했고, 살짝 건강염려증이 있었고, 말에 대한 열정을 키워보려 노력했고, 멋쟁이가 되려다 실패했다.  시간은 지속적인 가려움이 되었다.  벤저미니은 진정한 본성을 거슬러 유럽으로 여행을 떠날 계획을 세웠다. 구대륙에서 관심이 가는 부분은 이미 책으로 배운 터였다. 현장 경험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낯모르는 사람들과 배 안에 며칠씩 갇혀 있어야 한다는 점도 전혀 기대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 뉴욕을 떠날 일이 있다면 지금이 적절한 시기라고 자신을 타일렀다.  2.  벤저민은 돈의 뒤틀림에 매료됐다 - 돈을 뒤틀면, 돈이 자기 꼬리를 억지로 먹도록 만들 수 있었다. 투기의 고립되고도 ..
  • 골든아워 4
    1. 외상외과는 의료계에서조차 뭔지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분야였다. 내가 이 일을 붙들고 있음으로써 나는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 분야의 필요성에 대해서 말하고 다녀야만 하는 현실이 지독히 싫었다. 나의 가치는 늘 타인에 의해 결정되었고 내 위치는 상대와 맞물려 돌아갔다. 현실에 내가 머물 자리가 없는 것만 같았다. 그해 말 〈한겨레신문〉의 김기태 기자가 병원에 찾아왔다. 준수한 외모의 젊은 기자는 일주일간 날밤을 새우며 나와 함께 있었다. 처참하게 뭉그러진 환자들을 목겨한 그는 죽음에서조차 계층 차이가 존재한다며 한탄했다. 김기태가 내게 말했다. - 세상이 왜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를 한동안 응시하다 대답했다. - 원래 세상이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