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러스트 (채권-해럴드 배너. 셋)

1.

 

 평생 자족적으로 살아왔다는 점을 자랑으로 삼던 사람이 문득 세상을 완전하게 만드는 건 친밀함이라는 걸 깨달으면, 친밀함은 참을 수 없는 짐이 될 수 있다. 축복을 발견하면 그 축복을 잃을지도 모륻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니 말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에게 과연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권리가 있는지 의심한다. 사랑하는 상대가 자신의 숭배를 지루하다고 느낄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상대에 대한 갈망이 그들로서는 직접 확인할 수 없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드러났을지 몰라 두려워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 모든 의문과 걱정의 무게에 허리가 굽어져 자신의 내면을 보게 되고, 동반자 관계에서 새로 발견한 기쁨 탓에 이제는 떨쳐버렸다고 생각했던 고독을 더욱 깊이 표현하게 된다.

 

 

2.

 

 헬렌은 언제 마지막으로 울었는지 기억나지도 않았지만 울음이 나왔다. 처음에는 자기가 흐느끼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슬픔에 영향을 받지 않은 마음속 일부로는 부모를 잃고 슬퍼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알아싿. 눈물이 감정과 아무 상관이 없는 본능적 반사작용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마음은, 굽힐줄 모르는 신념과 부담스러운 광기를 품은 아버지가 떠났다는 점을 알고 확실한 안도감을 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디로 떠났다는 걸까? 이 질문과 함께, 슬픔이 그녀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아버지는 포격으로, 혹은 유탄에 맞아 사망했을지 몰랐다. 얼어죽었을 수도, 굶어죽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살아 있을 수도 있었다. 헛소리를 중얼거리는 바보가 되어 시골을 헤매고 다니거나, 말 한마디 못 알아듣는 도시를 돌아다니며 구걸을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회복해서 딸에 대한 혼란스러운 기억을 아플 때 그를 괴롭혔던 환각 중 하나로 치부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가정 절대적인 의미에서, 헬렌은 아버지를 잃었다.

 

 

3.

 

 사람들은 대부분 각자가 승리에 있어서는 적극적 주체이지만 실패에 있어서는 수동적 객체일 뿐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승리하는 건 우리지만, 실패하는 건 우리가 아니다 - 우리의 통제력을 벗어난 힘 때문에 망가지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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