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그녀와 대화 비슷한 것을 나누는 일이 가능해졌다. 이런 식의 호전은 헬렌을 늘 벤저민에게서 갈라놓던 거리감을 되살렸다. 어쩌면 거리감이 더 커졌을 수도 있다. 헬렌이 벤저민을 아랑본 건 사실이었다. 심지어 그녀는 벤저민에게 예의를 지키기도 했다. 하지만 벤저민은 그 방식이 소름 끼치게 느껴졌다. 둘 사이의 간격을 줄여보려던 헬렌의 옛 노력은 이제 멈춰버렸다. 그런 애정어린 시도야말로 둘의 결혼생활의 토대였는데 말이다. 벤저민은 지난 세월 동안 그녀의 노력에 감동을 받았었다. 심지어 그런 노력이 자연스러운 사랑보다 값진 것이라고 느꼈다.
2.
... 벤저민은 일부러 타일에 신발을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자기가 왔다는 걸 알리려 했다. 헬렌이 그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적막한 폐허와도 같았다. 무언가 망가지고 버려졌다. 존재가 소진되었다. 그녀의 눈은 벤저민을 보지 않았다. 그저 번저민이 안쪽의 잔해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벤저민은 허리를 숙이고 그녀의 그을린 이마에 입을 맞춘 뒤 그녀가 무척 용감했다고, 잘해냈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가 미소 짓고 있는 것이기를 바랐다.
3.
이 시기에 브레보트 부인은 열정적으로 슬퍼하며 애도의 가능한 모든 사회적 가능성을 탐사하고 있었다. 그녀는 가장 짙은 검은색 옷을 입었을 때 예성치 못하게 빛났으며, 자신이 "위엄 있다"고 부르는 오만한 형태의 슬픔을 강조할 수 있도록 유난히 구슬프게 눈물을 흘리는 친구들로 주위를 둘러쌌다. 그녀가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꾸며낸 우스꽝스러운 애도의 장면 이면에서 진정한 고통을 느꼈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이는 과장된 만화적 태도가 그 태도로 감추고자 했던 감정의 강도를 정확하게 드러낸다는 걸 깨닫지 못한 채 과장과 허풍으로 진짜 감정을 숨기기도 하니 말이다.
4.
시간이 지나면서 벤저민은 두려운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헬렌의 죽음이 그의 인생에 아무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본질적으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애도는 결혼생활에 대한 좀더 근본적인 표현일 뿐이었다. 애도도 결혼생활도 사랑과 거리감이 기이한 조합에서 나온 결과였으니까, 헬렌이 살아 있을 때, 그는 헬렌을 자신과 나눠놓는 심연을 도저히 건널 수 없었다. 그는 실패한다고 해서 화를 내거나, 그 틈을 건너갈 새로운 방법을 찾는 시도를 포기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지금도 그의 사랑은 변함없었다. 거리감만 절대적인 것이 되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