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아워 4

1.

 

 외상외과는 의료계에서조차 뭔지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분야였다. 내가 이 일을 붙들고 있음으로써 나는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 분야의 필요성에 대해서 말하고 다녀야만 하는 현실이 지독히 싫었다. 나의 가치는 늘 타인에 의해 결정되었고 내 위치는 상대와 맞물려 돌아갔다. 현실에 내가 머물 자리가 없는 것만 같았다.

 그해 말 〈한겨레신문〉의 김기태 기자가 병원에 찾아왔다. 준수한 외모의 젊은 기자는 일주일간 날밤을 새우며 나와 함께 있었다. 처참하게 뭉그러진 환자들을 목겨한 그는 죽음에서조차 계층 차이가 존재한다며 한탄했다. 김기태가 내게 말했다.

 - 세상이 왜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를 한동안 응시하다 대답했다.

 - 원래 세상이 이런 건데요.

 김기태는 말이 없었다. 지옥 같은 한 해가 앞이 보이지 않는 채로 저물고 있었다.

 

 

 

2.

 

방향성


 김재근과 이기명은 병원 내에서 의견을 나누고 배울 수 있는 몇 안되는 동료였다. 외상외과와 관련된 문제들에 있어서 두 사람의 말은 종종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되었다. 김재근의 조언은 귀기울일 만한 것이었고, 이기명이 제시하는 방향은 명쾌했다. 이기명은 어려운 문제에 봉착해서도 길을 잃지 않았다. 그는 답이 당장 보이지 않아도 정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가면 된다고 했다. 그렇지, 방향이다. 어쩌면 해답을 한 번에 구하려는 것은 우매한 노력일 것이다. 그 노력이 좌절에 빠져 헤매고 있을 때 이기명의 태도는 내게 늘 신선한 충격이었다.

...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공허함이 밀려들었다. 환자의 숨이 붙어있을 경우를 전제로 한 이야기였다. 조금만 더 나빠지면 운구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당연히 우리에게도 부담이었다. 병원 윗선에 허락을 구해야 하지만 승인 여부는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해군 출신의 선장이 죽어가고 있었다. 나는 모르는 척할 수 없었다. 죽든 살든 그는 고국으로 와야 했다.

 - 어쨌건 환자를 직접 봐야 어떻게 할지 알 수 있을 겁니다.

 내 대답에 사무관의 목소리가 좀 나아졌다. 전화를 끊자 텅 빈 사무실이 적막했다. 나는 성공 확률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를 데려오는 일, 그것만을 머리에 담았다.

 

 

 

3.

 

 떨어지는 칼날은 잡지 않는 법이다. 석 선장은 무섭게 떨어지는 칼날이었다. 환자의 상태가 극도로 나쁠 때 의사들은 섣불리 나서지 않는다. 환자가 살아나도 공은 제 몫이 되지 않고, 환자가 명을 달리하면 그 책임은 마지막까지 환자를 붙들고 있던 의사가 오롯이 져야 한다. 그것이 이 바닥의 오랜 진리다. 석 선장이 살 가능성은 희박했고, 최악의 경우 내가 져야 할 책임은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2010년 말을 지나며 전해 들은 보건복지부 내의 기류로는 중증외상센터 건립 사업이 다시 추진되기란 힘들어 보였다. 병원 내부에서는 더 이상의 추진 동력을 끌어낼 수가 없었고, 병원 밖인 학회나 정부 정책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오직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가망 없이 끝난다는 사실만이 분명했다. 나는 비를 맞으며 혼자 길바닥에 선 것 같았다. 처마 없는 곳에서 우산 하나없이 아무리 몸을 웅크려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 모두 젖어들 것이다. 홀로 빗길에 떨며 서 있느니 세찬 폭풍우 한번 겪고 끝내는 것이 나았다. 어차피 이미 젖은 몸이기도 했다. 오만에 가기로 결정하고 나는 오랜만에 웃었다. 최악의 상황을 맞더라도 마지막으로 좋은 일을 하러 가는 셈 치자며 팀원들을 다독였다. 내 말에 누구도 웃지 못했다. 어쩌면 그들에게 나는 배를 버리려는 선장처럼 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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