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아워 3

1.

 

- 아무리 수많은 사람이 노력하고 필요성을 알린다고 해도 국가 정책이 움질일 수 있는 파이는 정해져 있어요. 그게 현실이고 사실이죠. 민주 국가에서 정책을 집행할 때 다양한 안건이 수많은 사람들을 거쳐 진행됩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일들이 발생하고요. 시급했던 정책들이 미뤄지다 폐기되기도 하고, 대규모 국책사업이 예산 낭비로 판명되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어떻게 합니까? 옳은 방향에 대한 각자의 생각이 다 다른걸요.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제대로 된 중증외상센터가 없다고 나라가 망하지는 않는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것 없이도 지금까지 잘 지내왔다. 중증외상 의료 시스템이 없어 죽어나가는 목숨보다 더 많은 목숨이 걸린 중대 사안은 많을 것이다. 그것들조차 잰걸음을 하다 고꾸라질 수도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책의 우선순위는 사안의 중요성보다 누가 얼마만큼 관심을 가지고 동의하느냐에 달려 있다. 대한민국에서 '기본'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이 중중외상 분야뿐인가? 노동 현장이나 교육 현장이나, 수많은 사안들이 주먹구구식으로 흘러간다. 힘없고 돈 없는 이들에게 '기본'이라는 말은 참으로 사치스러운 단어다. 기준도 저마다 달라 싸움은 곳곳에서 벌어진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인정하기 쉽지 않았다. '왜 우리는 안 되는 것인가?' 하는 답 없는 의문만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2.

 

 의사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중환자 치료법들은 회복에 강력한 지원군은 될 수 있어도 많은 경우 장기 자체를 대체할 수는 없으므로 결국 무력했다. 의사는 환자가 어떤 경로를 타고 갈지 알지 못한다. 의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호전될 '확률'을 높이는 것 뿐이다. '확률', 과학의 영역 내에 있는 의학은 결국 확률을 끌어오리는 싸움이다. '통계적으로 유의한' p값(p-value, 유의확률)이 0.05이하에 머무는 범위 안에서 뚜렷한 치료 효과를 올리기 위한 투쟁이 곧 의학이 걸어온 역사다. 의사는 그 확률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실수를 줄이면서 한발 빠른 타이밍에 적절한 치료를 쏟아부으려 애쓴다. 그럼에도 상태 호전에 대한 100퍼센트 확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누가 죽고 누가 살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이러한 개별적인 환자들의 삶과 죽음의 객관화된 수치로 환산되어 통계상 수치에 반영된다. 그 수치를 근간으로 현재 시행하는 치료법이 교과서적으로 남을지, 아니면 점차 다른 방향으로 진화해갈지 결정된다. 한 환자의 삶과 죽음은 앞으로 계속될 타인의 치료를 위한 자양분이 되는 셈이고, 그러려면 부지런히 자료를 축적하고 분석해야만 한다. 환자들 개개인의 삶과 죽음에 대한 모든 과정은 개인적인 삶의 궤적으로서만 남는 것이 아니라 수치와 연구물로도 남아 영속성을 가진다. 나는 그것을 모두 지켜보고 기록하는 과정 가운데 서 있었다. 한 사람의 생사가 누군지도 모를 이의 생사에 영향을 주는 이 기막힌 순환 고리가 나는 경이로우면서도 무서웠다.

 

 

 

3.

 

 외래에서 경과를 추적 관찰받던 그 아이는 기적같이 좋아졌다. 적절한 치료만 이루어지면 아이들은 스스로 살아났다. 소아 환자들의 회복탄력성은 늘 감탄스러웠다. 이들은 어른에 비해 충격을 견디는 힘이나 체내 혈액량이 훨씬 적어 외상에 취약해 보이지만 초기 치료를 잘 받아 고비를 넘기면 극적으로 회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회복 과정에서 보이는 재생력은 어른을 능가하는 경우가 많아 의료진을 놀라게 했다. 나는 그것을 수없이 보아왔기에 환자가 소아 연령일 경우 보호자들을 진정시키며 끝까지 치료하자고 권했다. 보호자와 의사가 같은 방향을 보고 있어야 환자의 치료 결과가 좋다. 양쪽 의견이 엇갈리면 환자는 생사의 경계에서 다시 넘어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환자가 어린 경우에는 의사와 보호자들의 시각이 대부분 일치하고 부모는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그래서 소아 중증외상 환자의 치료는 큰 부담과 큰 보람을 동시에 안긴다.


 남아 환아들은 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어 군 입대를 목전에 두면 병사용 진단서를 발급받으러 부모와 함께 찬아오곤 했다. 눈앞에서 마주하는 청년은 대부분 기억 속의 아이와는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나는 그렇게 세월이 지나가며 내가 치료한 아이가 변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어린아이에 불과했던 환자가 성인이 되어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줄 때, 그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았다. 소아과 의사들만큼은 아니겠으나 소아 외상 환자들을 잘 치료해 다시 부모 품으로, 학교로 돌려보낼 때의 마음은 남다르다. 아이들은 자라나 성인이 되고, 성인이 되어 이 사회에 기여할 것이며, 그것이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틀이 될 것이다. 죽다 살아난 어린 생명이 자라서 사회의 한 축이 되어주리라는 생각을 할 때 나는 가슴이 부풀었다. 어쩌면 그것이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가질 수 있는 의미일 거라고 생각했다.

 

 

4.

 

 남자가 우리 병원에 도착한 때는 새벽 3시가 넘어서였다. '골든아워'를 훌쩍 넘긴 뒤였다. 단 1초라도 지체할 수 없었다. 추가 검사 없이 기관삽관만 해서 그대로 수술방으로 올렸다. 미리 와 있던 마취과 박성용 교수가 수술방에서 나를 맞았다. 모두들 분주한 가운데 나는 박성용을 보고 안도했다. 박성용은 오랜 동료이자 친구였다. 내가 피바다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마다 환자가 이승을 떠나지 않게 함께 버텨줬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를 잘 알았다. 언제나처럼 박성용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 드랩하고 시작하시죠.

 너무 급한 상황에 드랩마저 건너뛰려고 하자 박성용이 상기시켰다. 환자의 몸에 칼을 대기 전에 드랩은 가능한 한 필요했다. 박성용이 이어 물었다.

 - 끝까지 해보실 거죠?

 단순한 물음이 나는 고마웠다. 내가 포기하지 않는 한 박성용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베타딘을 환자의 목에서 무릎까지 가득 뿌리고 그대로 수술포를 덮었다.

 - 박 교수님,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아무리 급해도 외과 의사는 칼을 들기 전에 마취과 의사에게 수술 시작에 대한 동의를 구해야 한다. 환자의 상태에 대해 최좋 확인을 요고하는 것이자 서로에 대한 예우다. 외과 의사가 동의를 구하고 마취과 의사가 동의하는 순간, 둘은 사선을 넘나드는 전투를 함께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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